우리가 그동안 영어 공부의 정석이라고 믿었던 ‘단어 암기’가 사실은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일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왜 그런지, 그리고 진짜 영어 실력을 키워주는 ‘독서’라는 강력한 무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왜 단어 암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까요?
우리는 흔히 영어가 안 되는 이유를 ‘단어’ 탓으로 돌리곤 해요. 문법은 어느 정도 아는데, 단어를 몰라서 문장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수많은 단어장들이 불티나게 팔립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공부는 영어 실력 향상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 뇌는 암기한 걸 금방 잊어버려요
단어를 한국어 뜻과 짝지어 외우는 것은 우리 뇌의 ‘서술적 기억(declarative memory)’에 의존하는 활동입니다. 전화번호나 역사 연도를 외우는 것과 같은 방식이죠. 서술적 기억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에 따르면, 우리는 학습 후 한 달만 지나도 외운 것의 약 80%를 잊어버린다고 해요. 잊을만하면 또 외우고, 또 외우고… 물론 이런 노력을 계속하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를 사용할 때 우리 뇌가 그 장기 기억 창고에 접속하기나 할까요?!
언어 사용은 ‘기억해내는’ 과정이 아니에요
더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언어를 구사하는 행위는 암기한 정보를 ‘꺼내는(recall)’ 과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험 볼 때는 단어 뜻을 기억해내야 하니 암기가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produce)는 전혀 다른 뇌의 영역이 작동합니다.
비유하자면, 우리 뇌를 컴퓨터라고 해볼게요. 영어를 듣고 말하는 언어 능력은 C 드라이브에 설치되어 있는데, 우리가 억지로 외운 단어들은 D 드라이브에 압축 파일로 저장해 둔 것과 같아요. 말을 하려고 하면 뇌는 자연스럽게 C 드라이브에 접속하는데, 필요한 단어는 엉뚱한 D 드라이브에 있으니 머릿속이 하얘지는 거죠. 토익 900점이 넘어도 회화가 안 되는 미스터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는 1:1 짝꿍이 될 수 없어요
‘run = 뛰다’ 라고 외우셨나요? 그럼 이 문장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 He runs the company. (그는 회사를 운영한다.)
- My nose is running. (나 콧물 흘러.)
- Buses to Oxford run every half-hour. (옥스포드행 버스는 30분마다 있다/다닌다.)
- NYT decided to run the story. (NYT는 그 기사를 싣기로 했다.)
보시다시피 ‘뛰다’로 해석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영어 단어는 하나의 뜻만 갖기보다 문맥 속에서 뉘앙스가 결정되는 ‘모호함(ambiguity)’을 특징으로 합니다. 이걸 한국어 단어와 1:1로 짝지어 외우는 건, 정말이지… 엄청난 삽질이었던 거죠.
그렇다면 뇌는 영어를 어떻게 배울까요?
fMRI 같은 뇌 영상 기술의 발전 덕분에,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졌습니다.
언어의 집, 브로카와 베르니케 영역
우리가 모국어든 외국어든 언어를 사용할 때는 뇌의 특정 영역, 바로 좌뇌의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과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이 활성화됩니다. 1997년 <네이처>지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어릴 때 이중언어자가 된 사람이든 성인이 되어 이중언어자가 된 사람이든, 두 언어를 구사할 때 모두 이 영역들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이는 곧, 외국어 역시 모국어를 배우는 방식과 같거나 유사한 방법으로 습득해야 한다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진짜 잘하는 사람들의 뇌는 효율적으로 작동해요
반면, 2001년 마이클 울먼(Michael Ullman)의 연구에서는 외국어에 서툰 학습자일수록 언어를 사용할 때 특정 영역이 아닌 뇌의 좌우반구 전체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어요. 우리가 영어로 말하려고 할 때 머리가 복잡해지고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길을 모르니 뇌가 우왕좌왕하는 것이죠.
진짜 영어 실력을 키우는 독서의 힘! 💪
자, 이제 해결책을 이야기할 시간이에요. 단어 암기라는 허튼짓을 멈추고, 우리 뇌가 언어를 배우는 방식 그대로 영어를 습득하는 유일무이한 방법! 그것은 바로 ‘독서’입니다.
스토리가 있는 책을 읽으세요 (Narrative Reading)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은 신문이나 전공 원서가 아닌, 스토리가 있는 책, 즉 소설이나 동화책입니다. 왜냐하면 스토리는 우리에게 상상하고 추론할 여지를 주기 때문이죠.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르는 게 중요해요.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5개 이상 나온다면 그 책은 당신에게 너무 어려운 책이니, 과감히 더 쉬운 책으로 바꾸세요.
사전은 잠시 멀리, 추측하는 습관을 기르세요 (Guessing)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바로 사전을 찾지 마세요!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앞뒤 문맥을 통해 ‘이런 뜻이 아닐까?’ 하고 상상하고 추측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그냥 넘어가세요. 이 ‘애매모호함을 견디는 능력(Ambiguity Tolerance)’을 길러야 합니다. 답답함을 참아내고 대충 넘어가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 해요. 그래야 지치지 않고 많이 읽을 수 있거든요.
아주, 아주 많이 읽으세요 (Extensive Reading)
많이 읽는 것, 즉 ‘다독(Extensive Reading)’은 어휘력 향상의 핵심입니다. <읽기 혁명>의 저자 스티븐 크라센 교수는 “독서는 영어를 습득하는 최상의 방법이 아니라 유일한 방법이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한 연구에서는 성인 학습자들이 영어 소설책을 1시간 읽을 때마다 토익 점수가 평균 0.62점 상승했다는 결과를 발표했어요. 이론적으로 3년간 매일 1시간씩 책을 읽으면 토익 250점에서 950점까지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왜 영화나 드라마보다 책일까요?
미드나 영드로 공부하는 것도 리스닝에는 분명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어휘력과 문법의 내공을 쌓는 데는 독서를 따라올 수 없어요. 왜냐하면 독서는 ‘능동적인 인지(Active Cognition)’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볼 때 우리는 감독이 만들어준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책을 읽을 때는 우리 머릿속에서 스스로 장면을 그리고, 인물의 감정을 상상하고, 앞으로의 내용을 추론해야만 하죠. 이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이 무의식적으로 축적되면서, 단어와 문장 구조가 저절로 내 것이 되는 거예요.
이제 단어장 대신, 당신의 마음을 설레게 할 영어 동화책 한 권을 골라보는 건 어떨까요? 딱 100일만, 하루 10분만 같은 달콤한 거짓말에 더는 속지 마세요. 영어 습득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하고 즐거운 길은 분명히 존재한답니다.
그 길 위에서 여러분의 영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 저는 확신해요